열이 내리고 우리는 헤어졌다
Language: ko

온종일 몰아치는 업무를 끝내고, 비에 젖은 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. 온몸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웠다. 체온계는 39도를 가리키고 있었고,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. 저녁을 차려 먹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. 그 와중에 비즈니스 미팅이 있다며 늦을 거라던 서준이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. 그는 허둥지둥 구급상자에서 해열제를 찾아내더니,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툭 내뱉었다. “다혜가 오늘 비를 맞아서 감기 몸살이 심하대. 자기가 먹기 편하게 부드러운 죽 좀 쑤어줘. 나 해열제 가져다주면서 같이 챙겨가게.” 순간, 협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이며 요즘 SNS에서 한창 화제인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. ‘상대방이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언제인가요?’ 나는 멍하니 서준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,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 글 아래 댓글을 달았다. [지금 이 순간이요. 그런데 다행인 건, 저 역시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.]