부유한 집안 출신의 말 못하는 아내는 결코 순진하지 않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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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아버지께 전화를 거는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. 신호음이 가고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, 나는 쇳소리가 섞인 듯한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. “온 회장님 댁 그… 모자란 손녀분, 아직 살아있나요? 저, 그 집안이랑 정략결혼 하겠습니다.” 어젯밤, 서재 밖에서 들었던 그 대화만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. 지난 3년간 내 온 세상을 지탱해 온 믿음이 단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. 내 약혼녀. 3년 전, “이번 작전만 끝나면 바로 네 남자가 될게”라며 떠났던 전설적인 블랙 옵스 요원 심채윤. 그녀는 자신의 부하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명령하고 있었다. “진우현이랑 그 아이 일, 절대로 시준이가 모르게 해.” 부하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. “하지만 별이가 벌써 두 살이에요. 팀장님 친자식이잖아요! 애 낳으려고 일부러 S급 장기 잠입 임무라고 거짓말까지 하셨으면서…” 천 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바쳤던 기다림은, 고작 그녀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기 위해 꾸며낸 연극의 배경일 뿐이었다.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의 눈가에 서린 피로함이 치열한 사투의 흔적인 줄로만 알았다. 이제 보니 그건 두 남자…